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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17년차 노력형 슈터 김보미, 최고보다는 최선을!(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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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림

서태림 명예기자

(1편에 이어서)

 

기자 : 당시 많이 힘드셨을 때 특별히 힘이 되었던 사람이 있나요?

 

김 : 십자인대 수술을 하고 복귀를 준비할 때 현재 남편을 만났어요. 예전 하나은행에 있던 트레이너 선생님께 소개를 해주셨는데 사실 저는 원래 운동선수는 안 만난다는 주의였거든요. 그 선생님도 그걸 아셨지만 어느 날 갑자기 휘문중학교 코치를 소개받을 생각은 없냐며 전화를 하셨어요. 그때 제가 “아 선생님~ 저 운동선수 안 만난다고 했잖아요~”라고 했지만 선생님께서 정말 책임감이 강하고 좋은 사람이라며 소개를 권유하셨어요. 이미 느낌상 두 분이 식사 자리에서 얘기를 다 하신 후 저에게 전화하신 것 같았고 저만 대답하면 되는 상황 같았어요. 그때는 같은 농구 쪽에 있던 사람이라 거절하기 어려웠고,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분이라 한 번만 소개팅을 해 볼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소개를 받았고 전 정말 한 번만 만나려고 했어요. 그렇게 처음 만났는데 그날 그분이 소개팅 자리인데 펑퍼짐한 청바지에 헐렁한 남방을 입고 왔어요. 또 처음 만나서 같이 간 식당에서 우아함과 거리가 멀게 둘이 오징어 볶음을 싸 먹었어요. 왠지 모르게 그때 남편의 그런 편안한 모습이 참 좋았어요.

저는 자기가 하는 말에 책임지는 사람을 정말 좋아해요. 하루는 같이 밥을 먹을 때 제가 담배 피우는 사람과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은 안 만난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원래 예전에는 교회를 다녔었는데 요즘은 못 갔다면서 귀여운 핑계를 말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혼자 교회에 가서 인증사진을 보내줬어요. 보통 제 주변에는 교회를 누군가와 같이 가는 사람은 많아도 혼자 가는 사람은 드물었거든요. 또 담배에 대해선 앞으로 계속 줄여갈 것이며 절대로 제 앞에선 안 피기로 약속을 했어요. 그런 점들을 보고 그때 마음이 많이 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운동선수를 만나는 것에 대해 편안함을 느꼈어요. 제가 숙소 생활을 하는 점과 주말에도 오후에 잠깐 만날 수 있는 점을 그분은 다 겪어봤기 때문에 제가 굳이 이해 시키지 않아도 먼저 다 이해해주고 배려해줬어요. 특히 십자인대를 다치고 매일 벤치에 앉아있으면서 많이 힘들었을 때 오빠에게 힘들다고 얘기를 많이 했는데 오빠가 일주일에 3~4번씩 서울에서 천안까지 내려와 줬어요. 그때 10분 정도밖에 볼 수 없었지만 매일 그렇게 내려와서 다리도 주물러주고 같이 단대호수도 걸으면서 얘기도 많이 했어요. 그때 제가 “그만 두어야 할까?” 하고 물어보면 오빠는 저에게 “너가 농구가 싫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면 후회할 것이다. 그만두려는 이유가 게임 못 뛰고 몸이 아파서라면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운동 관두고 나면 몸을 많이 안쓰니까 통증은 자연스레 해결이 될테니 그런 후회는 안 했으면 좋겠다. 후회 없이 해야 하지 않겠냐”며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됐고 그러면서 차차 만나고 결혼을 하니까 마음의 심리적 안정감을 많이 느꼈어요. 지금도 많이 도움을 받아요. 많이 힘들고 그러면 “괜찮으니까 편하게 하고 다치지만 말고 와”라고 말해줘요. 내 편에서 들려주는 그 사소한 말 한마디가 정말 힘이 돼요.

 

 

기자 : 후배들에게도 얼른 결혼하라고 추천하실 것 같아요.

 

김 : 제가 위로를 받고 온 날이면 괜히 앞에서 몸 푸는 친구한테 “너도 빨리 좋은 사람 만나~”하며 얘기를 했어요. 기분이 좋으니까요. 물론 누군가를 만나면서 농구선수가 농구에 소홀하면 안 되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더 농구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결혼, 연애에 대해 정말 적극적으로 권장해요.

 

기자 : 선수 생활을 하시면서 대학원 석사 학위도 취득하셨어요.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하시는 것이 많이 어려우셨을 텐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김 : 이 계획을 사실 10년 장기로 놓고 예전부터 계획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제 멘토이신 김익겸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10년을 놓고 너가 10년 후에 하고 싶은 걸 준비해야 한다.” 근데 어릴 때만 해도 운동을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고 사실 저는 학교에 다니고 싶었어요. 캠퍼스를 느끼고 싶었고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30살에 은퇴하고 대학에 다니고 싶다 했더니 선생님께서 “너가 30살에 은퇴해서 4년제를 나오고, 대학원까지 다니면 37살에 교원 자격증을 겨우 딸 수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10년을 설정해놓고 그 안에 준비를 하는 게 어떠냐”며 말씀해주셨어요. 김익겸 선생님께 정말 감사했죠.  그때 제 나이가 25살이었고 그때부터 차근히 준비해서 대학교 학사 자격증을 평생교육원을 통해서 취득했어요. 그때는 교사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앞으로 은퇴 후에 뭐를 하던지 자격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도 가려 했어요. 여러 학교를 알아봤는데 용인대학교가 2~3과목은 인터넷 강의고 하루만 학교에 가면 됐어요. 제가 선수 생활도 하다 보니 수업을 자주 가는 것이 어려웠거든요. 근데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것도 고민이 되더라고요. 농구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그때가 KB에 있었을 때인데 당시 서동철 감독님께서 목요일 오후 운동을 다른선수들보다 조금 일찍 끝내고 학교를 가는 것에 대해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석사 학위를 땄어요. 그때는 정말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목요일에 운동 끝나고 ’룰루랄라‘하면서 신나게 학교를 다녔어요. 천안에서 용인까지 매주 운전하면서요.

 

기자 : 오랜 농구 인생만큼 다양한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하셨어요. 여러 팀을 경험하면서 얻게 된 장점이 있나요?

 

김 : 저는 지도자를 생각하고 있는데 많은 감독님, 코치님을 만나면서 다양한 배울 점을 얻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중에 지도자가 된다면 저분의 이런 면을 배워야지’ 하는 것들이 쌓이더라고요.

 

 

기자 : 가장 잊지 못하는 팀 또는 선수가 있나요?

 

김 : 아무래도 KDB 있을때죠. 운동도 힘들었고. 근데 다들 너무 재밌게 운동을 했어요. 정말 너무 힘든데 코트에 들어가서 공을 잡으면 다들 웃고 있었어요. 특히 오랜 기간을 한 팀에서 생활하니까 나중엔 눈빛만 봐도 통했어요. 보통 한 팀에서 서로 맞춰지는데 2~3년 정도가 걸리는데 5년을 함께하면 얼마나 잘 맞았겠어요. 제가 이상하게 공을 패스해도 다 잘 받아주고, 다 같이 리바운드하러 골 밑에 뛰어 들어가고. 그때로 돌아가라 하면 너무 힘들어서 싫지만 그때가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많이 그리워요. (신)정자언니, (홍)현희언니, (한)채진언니, (이)경은이, (곽)주영언니, (원)진아언니, (조)은주언니, (김)진영언니랑 같이 했던 그때가 정말 아직도 생각이 많이 나요. 가끔 채진 언니랑 그때가 그립다며 연락을 주고받기도 해요.

 

기자 : 평소 건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보미 선수만의 몸 관리 팁이 있나요?

 

김 : 저는 건강식품을 정말 좋아해요. 저희 아버님이 몸이 약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한의학 공부도 하셨고 좋은 음식이 뭔지 공부를 많이 하시고 저에게 좋은 걸 많이 추천해주셨어요. 건강식품은 가장 기본적으로 챙겨 먹는 거라면 요즘은 김익겸 선생님과 함께 유연성 운동을 자주하고 있어요. 또 개인적으로 저녁에 필라테스를 다니면서 속 근육을 키우고 있어요. 속 근육은 필라테스로, 큰 근육은 웨이트로 키우는 거죠. 그렇게 몸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 : 건강식품 초보자가 입문하기 좋은 것을 추천한다면?

 

김 : 제가 윤예빈 선수에게도 추천을 해줬는데 유황오리 엑기스를 추천해요. 그게 매일 중탕을 해서 먹어야 해서 조금 먹는 방법이 까다롭긴 해요. 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중탕을 해서 먹었더니 추위도 많이 안 느끼고 효과를 많이 봤어요.

 

기자 : 훗날 농구 코트를 떠난다면 꿈꾸는 제2의 삶이 있으신가요?

 

김 : 우선은 지도자를 생각하고 있어요. 어릴 땐 사실 지도자를 안 하고 싶었어요. 매일 농구만 하다 보니 농구를 그만두게 된다면 농구와 관련이 없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었어요. 다 해보고 그다음에 안돼서 돌아왔을 때 지도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휴가 때 학교에 갔는데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중ㆍ고등학생들이 하는 걸 보면서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저 자세는 저렇게 바꾼다면 달라질 텐데’하는 게 자꾸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코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기회가 있다면 지도자를 하고 싶어요. 그 외 다방면으로도 고민하고 있지만요.

 

기자 : 과거 2008년 점프볼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곰 같은 선수’라고 표현하셨던 것 기억나시나요?

 

김 : 기억나요. 그때 제가 패스를 주는 모션이나 슛을 던지려고 하는 동작들이 곰처럼 느려서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아요.

 

https://youtu.be/XJSPoaCboWg

 

기자 : 그렇다면 12년이 지난 지금, 김보미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김 : 제가 타고난 센스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때도 그런 의미에서 곰 같은 선수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전 지금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센스가 없으니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일대일 공격을 하기보다 다른 선수의 스크린을 타고 난 후 3점을 쏘고, 속공 때 열심히 뛰어서 패스를 넘겨받고 하기 때문에 지금도 저는 비슷하게 생각해요. 그러나 그때보다 조금 농구를 보는 눈이 열린 것 같아요.

 

 

기자 : 어떤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김 : 어렸을 때부터 처음 프로에 왔을 때부터 최고의 선수가 되기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고 싶은 목표가 있었어요. 끝까지 그런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트에서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그렇게 기억될 수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기자 : 남은 경기 각오는?

 

김 : 저희 팀 나름대로 작년의 부진을 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또 코트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아쉬운 부분과 부족한 점은 지속적으로 소통을 통해 채워가고 있습니다. 매 순간마다 저희가 조금 실수도 하고 그러더라도 믿고 끝까지 응원해주시면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서 팬 여러분들께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글 - 서태림 명예기자          

사진 - 이진호, 김은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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