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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팬들이 있어 더욱 빛났던, 15년만의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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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영

정호영 명예기자

들어가며

 

15년만의 우승을 차지한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언더독의 반란이라 불리던 그들이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 함께 환호하고 함께 눈물 흘리는 팬들이 있었기에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우승은 기적으로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무관중으로 이어진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코로나 19가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한, 지난 2020년 3월 20일, WKBL은 리그 중단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 삼성생명 블루밍스는 2019-20 시즌 9승 18패, 리그 최하위라는 수모를 겪었다.

 

코로나 19는 이듬해까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10월 개막한 여자프로농구 2020-21 시즌 또한 11월 잠시 부분적으로 관중 입장이 허용되었지만 12월 2일부터 전면 무관중 경기로 전환되었다. 용인실내체육관은 활기를 잃었고, 팬들의 함성, 응원봉 소리, 응원단장의 리드, 치어리더의 공연마저 없는 적막 속에서 경기만이 진행되었다. 외로운 경기였다.

 

 

삼성생명 블루밍스는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리그 4위의 성적을 거뒀고, 플레이오프에서 20-21 리그 1위이자, 2010년대 WKBL의 절대적 제왕으로 군림하던 아산 우리은행 위비를 2승 1패로 제압하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챔피언 결정전-서막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난 상대는 청주 KB스타즈. 시즌 상대전적 1승 5패의 열세에 놓인 삼성생명에게 유리한 것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노장 김보미 선수의 마지막 투혼과, 1,2,5차전을 홈구장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치른다는 것. 1차전 3일 전 3월 4일, 때마침 WKBL은 챔피언 결정전을 유관중 경기로 진행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블루밍스는 홈팬들 앞에서 치룬 2경기를 모두 가져가며 3월 9일, 우승을 목전에 두게 된다.

 

그러나 유관중 경기의 이점은 청주KB스타즈 또한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청주실내체육관에 들어찬 자신들의 팬 앞에서 그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 2연승을 거두며 2승 2패로 챔피언 결정전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홈구장에서 펼쳐질 단 한 경기에 모든 것이 걸린 상황. 삼성생명 블루밍스와, 블루밍스를 응원하는 200여명의 팬들, 그들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가진 채 3월 15일 오후 7시, 용인실내체육관으로 모여들었다.

 

팬들이 보내준 열정, 열정에 보답한 선수단, 모두가 하나가 된 순간.

 

용인실내체육관을 채운 블루밍스의 팬들은 시즌 내내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었던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매 순간 순간마다 엄청난 응원을 보여줬다. 평범한 골밑 2점 득점 때는 마치 동점 혹은 역전 3점을 넣은 것 같은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고, 3점 득점은 4쿼터 마지막 역전 버저비터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함성이 응원석에서 터져 나왔다.

 

 

팬들의 응원이 기쁜 순간에만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벤치 뒤 응원석에서는 교체 되어 들어가는 선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윤예빈 파이팅!”, “배혜윤 파이팅!”이란 진심어린 팬들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고, 슛을 쏘는 선수의 이름을 외치며 “단비야 제발!” 이라며 기도하는 간절한 목소리도 매 번 들려왔다.

 

팬들의 하나 된 열띤 응원은 4쿼터 김보미 선수의 투혼에서 그 절정을 보여주었다. 4쿼터 마지막 추격을 시작한 KB스타즈는 12점까지 벌어졌던 점수 차를 9점까지 줄였고, 응원석에선 ‘설마’ 하는 걱정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상가상 김단비 선수의 3점 슛이 빗나가며 분위기가 넘어가려는 찰나, 3점 라인 바깥에 있던 김보미 선수가 순식간에 뛰어 들어와 공격 리바운드를 따낸 뒤 득점에 성공했다. 득점 직후 김보미 선수는 팀의 차세대 에이스 윤예빈 선수에게 안기며 코트에 쓰러졌다.

 

 

이 순간, 응원석의 함성소리는 경기장 가득, 아니 경기장을 뚫어버릴 듯 울려 퍼졌다. 자칫하면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한 번에 지워버리는, 우승을 확정짓는 득점에, 플레이오프부터 이어진 선수들의 투지와 헌신에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성으로 감사를 건넸다.

 

팬들의 열정과 바람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니, 그들의 열정과 신뢰를 등에 업은 선수들의 경기력은 하늘을 찔렀다. 정규시즌 3점 경기당 6.4개, 성공률 27.5%로 최하위를 달리던 블루밍스였지만, 오늘은 성공률 42.1%, 8개의 3점을 터트리며 상대방의 추격의지를 꺾었다. 거기에 58.5%의 높은 2점 성공률을 곁들이면서 경기 시종일관 리드를 유지했다.

 

15년만의 우승, 언더독의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고 먼 길을 달려온 팬들은 선수단을 향한 엄청난 응원을 보내주고, 응원을 받는 선수단은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팬들에게 보답하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선순환이 삼성생명 블루밍스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삼성생명 블루밍스가 선순환 속에서 기적의 종지부를 찍으러 가는 동안, KB스타즈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들의 공격 때마다 응원단장의 ‘디펜’ 구호에 맞춘 블루밍스 팬들의 응원이 그들을 괴롭혔고, 행여나 운 좋게 자유투라도 얻을 땐 소음공해에 가까운 방해가 이어졌다. 자연히 경기력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턴오버가 속출했다. 턴오버가 나올 때마다 블루밍스의 팬들은 더욱 환호했고, KB스타즈를 감싸기 시작한 불안감은 무리하고 쓸데없는 파울로 이어졌다.

 

무리한 파울은 곧바로 삼성생명 블루밍스 팬들의 야유와 비난으로 심판받았고, KB스타즈 선수단은 점점 위축되어갔다. 그들은 더 이상 삼성생명 블루밍스 선수단과만 시합하는 게 아니었다. 체육관을 채운 200여명의 팬들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15년 동안 우승에 목 메마른, 기적을 목전에 둔 팬들 말이다.

 

그렇게 경기는 4쿼터 시작과 함께 결정지어졌다. 52:43, 9점 차의 리드로 4쿼터를 시작한 삼성생명 블루밍스는 선수들의 고른 득점과, 경기 끝까지 이어지는 악착같은 수비와 리바운드로 KB스타즈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우승, 15년 만의, 4위팀의, 기적 같은 우승

 

전광판의 시간이 1분, 24초, 8초, 점점 줄어갈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팬들이 늘어났다. 몇몇 팬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우승을 기다렸다.

 

마침내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리고, 축포와 함께 응원가 ‘아파트’가 흘러나오는 순간, 모든 팬들은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우승을 다 함께 축하하고, 다 함께 기뻐했다. 몇몇은 우승의 순간을 영상으로 찍어 휴대폰 속에, 또 다른 몇몇은 눈으로 찍어 가슴 속에 담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눈물로 15년의 설움을, 2년 전 챔피언 결정전 내리 3연패의 아픔을 씻어냈다. 40분 간 선수들과 함께 뛰며 울고 웃던 팬들은 그렇게 기적의 일부분이 되었다.

 

마치며.

 

잊을만하면 회자되는, 연세대학교 농구부 최희암 감독의 명언.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봤냐? 너희들처럼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 데에도 대접받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팬들한테 잘해야 한다.’

 

2021년 3월 15일 챔피언 결정전 5차전, 팬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우승할 수 있었을까. 청주에서 2승을 거두고 기세가 오를 만큼 오른 KB스타즈를 상대로 관중 없는 적막 속의 우승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글 – 정호영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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