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근 명예기자
블루밍스의 버팀목 배혜윤
배혜윤은 삼성생명과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임근배 감독의 신뢰를 받아 팀의 센터이자 주장으로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외국인 선수가 부상으로 인해 국내 선수들로만 엔트리를 이룰 때도 평균 20점 이상을 득점하며 절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데뷔 시즌인 2007년도부터 17시즌동안 그녀는 매 시즌 25경기 이상 출장했다. 그래도 큰 부상 없이 꾸준히 웃는 얼굴을 비추는 그녀는 금강불괴, 철강왕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적합한 선수였다.
2018-19시즌, 배혜윤의 독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6라운드 평균 22득점, 3.8리바운드, 3.8어시스트라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당연히 라운드 MVP도 배혜윤의 것이었다. 이 시즌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를 회상하여 그때의 기분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상이라는 게 받으면 좋지만 지나고 나면 또 생각이 안나요. ‘그냥 받았었다.’ 이정도? 당시에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어요.” 이어 팀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보면 저 혼자 잘한 게 아니에요. 팀이 잘했죠. 합도너무 좋았고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기억에 남는 시즌이에요.(웃음)”라며 본인의 우수한 성적보다 팀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팀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과 팀의 성적이 언제나 비례할 순 없었다. 삼성생명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다음 시즌이던 2019-2020시즌 삼성생명은 프로 출범 이후 처음으로 최하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때 당시의 심정에 대해서는 ‘속상함’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냥 계속 하염없이 속상했어요. 시즌 중에 동료 (김)한별 언니와 국가대표로 뉴질랜드에 대회를 나갔어요. 거기서도 ‘우리 진짜 어떡하지?’라는 말만 반복했어요. 외국인 선수가 부상으로 1라운드 정도 결장했던 시즌이었어요. 어떻게든 뒤집어 보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마냥 속상하기만 했어요. 거기다가 저도 부상까지 찾아오면서 스스로에게도 실망했고요.”
한 팀의 주장으로서 흔들리기 싫었던 배혜윤은 재활에 집중했다. 다음 시즌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준비했다고 전했다.
“최선을 다했어요.”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배혜윤은 힘든 감정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평소 훈련보다 훨씬 많은 양을 수행해 나갔다. 프로는 성과가 중요한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에 주장으로서 더 큰 절망감에 빠진 것이었다. 후배들에게도 본인이 먼저 거리를 뒀다. “힘든 상황에 제가 말을 걸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애들이 더 부담스러울 거 같아서...” 주장이었지만 주장도 기댈 곳이 필요했다. 그녀는 팀 내 선배 선수들에게 의지하며 한 시즌을 보냈다며 웃음을 지었다.
간절함을 알아준 것일까. 삼성생명은 2006여름리그 이후 15년만에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배혜윤은 이 순간을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뽑았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1위 우리은행을 만났지만 1패후 2승이라는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2년만에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이어 KB스타즈를 상대로 먼저 2승을 잡았다. “진짜 우승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모든 팀원들이 컨디션이 좋았고 합도 좋았어요. 특히 (윤)예빈이의 활약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멋진 활약을 해줬어요.”
하지만 내리 2연패를 하며 리버스 스윕을 당할 위기에 몰린 순간도 있었다. “원정 가서 지고, (김)한별 언니랑 불을 끄고 가만히 ‘어떡하냐’는 말만 반복했어요. 불안해하는 저를 보고 언니는 할 수 있다고 해줬지만 언니도 불안해 보였어요.” 2연승으로 우승이라는 꿈이 커진 가운데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출전한 4차마저 패했다. “4차전 패했을 때요? 이번에는 (박)하나랑 계속 울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힘들었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거 같아요.” 2006년 여름리그 이후 찾아온 기회를 배혜윤은 잡고 싶었다. 하지만 우승은 모두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어려웠다.
마지막 5차전, 삼성생명은 드라마 그 이상의 것을 써내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경기 전에는 “1,2차를 이기고 연속으로 다 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한 마음을 가지고 경기장에 들어갔어요. 근데 한 편으로는 너무 걱정됐어요.” 심지어 홈구장이 마지막 경기였다. 주장으로서 그 부담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배혜윤은 해냈다.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 모두가 눈물을 흘렸고 모두가 그 어느 순간보다 행복해했다.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진짜 드라마 같지 않아요?” 그렇다. 배혜윤은 드라마를 쓰고 있다. 팀이 최하위가 가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팀을 다음 시즌 바로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녀와 삼성생명은 운명일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운명인 것이다.
많은 경험을 쌓아가며 배혜윤에게 삼성생명은 당연한 것이 되어갔고 블루밍스를 생각하는 배혜윤의 마음가짐도 커져갔다. “어느 순간부터 큰 책임감이 들었어요. 가끔은 제가 더 잘해주면 좋을 텐데 저의 모자란 부분 때문에 미안한 기분도 들어요.” 이어 “블루밍스가 계속 잘됐으면 좋겠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삼성생명에서 11년동안 함께 하며 그녀는 큰 활약을 했고 많은 기록을 세웠다. 기록과 함께 그와 삼성생명의 유대감도 함께 커진 것이다.
“첫째는 무조건 건강! 둘째는 밝음!” 배혜윤은 모든 팀원이 건강한 게 우선이라 말했다. 우승을 목표로 하기 위해서도 팀원들이 모두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모두 밝게 지내며 소통할 수 있어야 함을 한 팀의 주장으로서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어 “몸도 건강하고 선수 자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건강해져 그 어떤 팀보다 모두가 밝은 이미지로 보이면 좋겠어요.”라며 팀원 전체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까지 엿볼 수 있었다.
“배혜윤이 생각하는 농구의 매력은?”
“농구요? 그냥 재밌지 않아요? 그냥 너무 즐거워요. 골이 다양하게 나오는 게 장점인 거 같아요. 예를 들면 파울 당하면 서서도 쏠 수 있고 골을 넣기전에 스텝도 진짜 많아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가장 배혜윤이 신났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팬에 대한 마음도 동시에 드러냈다. “팬분들을 만날 때 제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진심으로 응원해주실 때 행복해요. 그리고 동시에 놀라워요. 팀이 승리했을 때 본인의 일처럼 기뻐해주시고 졌을 때는 함께 슬퍼해주시는 모습...너무 감동적이에요.” 농구를 사랑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같은 목표로 달리는 것. 우리가 농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배혜윤과 삼성생명의 성장 스토리는 ‘현재진행형’이다. 삼성생명에서 함께 우승을 하며 어느새 배혜윤은 삼성생명에 없어서는 안 될 버팀목이 됐다. 긴 시간 주장으로서 활약했지만 그의 질주와 목표는 아직 남았고 앞으로도 더 달려갈 것이다.
기획/기사 - 정재근 명예기자